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알 아문센 (문단 편집) === 남극점을 향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lc_amundsen.jpg|width=100%]]}}}|| || 1908년의 로알 아문센 || 북서항로를 정복한 아문센은 [[북극점]] 탐험을 기획했다. 1907년, 아문센은 난센에게서 '프람 호'를 넘겨받았고 다음 탐험을 준비했다. 준비 과정에서 프람 호에는 [[디젤 엔진]]이 장착되는 속된 말로 [[마개조]]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3개월간 북해와 대서양을 항해하는 테스트를 하면서 성능을 입증하였다. 1908년에는 공식적으로 목표를 '북극'으로 잡았고,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1909년, 그가 탐험에 착수하기도 전에 미국의 피어리 제독이 먼저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당시에는 보도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문센은 엄청 분노했다. 어느 정도로 분노했냐면 남극점 탐험을 하고 쓴 책인 《남극》에서조차 '어릴 적부터 북극점 탐험을 꿈꿔왔던 내가 정반대 방향에 있는 곳에서 영광을 얻었지만 세상 누가 이런 정반대 방향의 꿈을 이룬 것을 더 좋아할까?' 라면서 애석하게 여기기도 했을 만큼이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노르웨이에서 [[남극]]보다 더 가까운 북극점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하던 그였기에 더더욱 분노했고 기왕이면 피어리가 거기서 확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막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정작 아문센의 사후,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사람 역시 아문센 본인이라는 설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이를 모르고 죽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피어리의 일지를 조사한 결과 피어리는 북극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현재 업계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현재는 피어리의 최초 북극점 도달 뉴스를 냈던 신문사조차 이를 취소했을 정도.] 또 1909년 아문센은 남극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노르웨이 변호사 레이프 카르스트베르의 부인인 시그리 카르스트베르를 알게 되어, 그녀와 내연의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극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관계를 정리했다. 9월 15일에는 남극 정복을 위한 훈련을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담배]]를 끊었고 정복이 완수될 때까지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 여간 저런 사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아문센은 계획을 변경하여 남극으로 배를 돌렸고, 같은 곳을 목표로 삼았던 영국 해군 [[장교]]인 [[로버트 스콧]] [[대령]]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세계 최강인 영국과 반대로 1905년 독립한 약소국이자 유럽 최빈국이었던 노르웨이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